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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회생, 희망의 땅 임실-오이 키우는 박병구씨
관리자 | 2018-08-01 12:04:59 | 1017

세심에서 오이를 키우는 박병구 씨는 고향이 임실이다. 어렸을 적 그는 부모님이 농사짓는 모습을 보고 자라면서 시골이 지긋지긋했다. 서울에서 멋있게 살고자 했는데 IMF 이후 사업이 계속 어려워졌고,  파산을 하고 말았다. 낭떠러지 끝에 선 그를 다시 따뜻하게 받아 준 곳은 결국 고향 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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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실이 고향이긴 하지만 농사를 한 번도 지어 본 적이 없는 박병구 씨는 처음부터 아내와 아이들 4명을 모두 데리고 내려오기에는 자신이 없었다. 2012년 귀농을 시작한 첫해는 혼자 내려와서 살았다. 부모님과 지인들이 있었고 어려울 게 없을 것으로 생각했다. 


“1년 동안 살아보니 농사가 별거 아니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솔직히 농사를 얕잡아봤죠 .”


그는 하우스 짓는 것부터 해서 정착금, 주택 수리비 등 귀농으로 받을 수 있는 지원은 모두 받았다. 사업가였던 그가 지원금 하나하나 받기 위해 서류를 준비하고 기관에 가서 기다리는 동안 모든 시선이 불편하고 어색했다. 하지만 그에게는 마지막 기회였다. 오이를 선택한 건 그 당시 세심에서 평당 소득으로 오이를 따라갈 수 있는 게 없었다. 그는 서울에서 고생하고 있는 가족들만 생각했다. 1년 동안 자리를 잡고 가족들과 함께할 그 날을 생각하며 밤낮없이 오이에만 매달렸다. 처음에는 주변의 이야기도 귀담아듣지 않았다. 농사도 정보만 있으면 가능할 것으로 생각했고 인터넷만 들어가도 모든 정보가 다 있었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멘토도 필요 없다고 생각했죠 . 솔직히 인터넷에 있는 정보들 가지고도 충분히 농사지을 수 있을 것 같았거든

요 . 그런데 제가 놓친 게 있더라고요 . 그건 통상적인 이야기일 뿐, 지역적 특성을 생각 못 한 거죠 .” 


아무리 많은 정보가 있다고 한들, 그 지역의 일조량, 밤 온도 등 세부적인 사항까지 딱 맞을 수는 없는 것이다. 결국 그 지역에서 오랜기간 동안 농사를 지어 온 이웃들의 도움이 필요 했다. 세심에 오이 농가만 11곳 정도 되는데 4년째 수익은 꼴등이지만 내년에는 중간 정도 하고 싶다며 자신감을 보였다. 


“주변에서 칭찬을 많이 해주셨어요. 특별한 감각도 있고, 눈썰미도 좋다고요 . 시설은 저희가 최고일 거예요. 어느 하우스를 가도 이런 시설은 없어요 . ”

 

처음에는 하우스 안에서 매일매일 쳇바퀴 도는 반복적인 생활이 힘들었다. 아이들도 어린 셋째와 넷째는 상관없었지만, 중 . 고등학교를 다니고 있던 첫째와 둘째는 갑작스러운 귀농을 심하게 반대했다. 오래 사귀어온 친구들과도 헤어져야 하고 시골 생활이 반갑지만은 않

은 나이였다. 하지만 그는 그런 아이들을 설득시킬 여유조차 없었다. 다행히 내려온 후 아이들은 생각보다 금방 적응해나갔다. 


“귀농은 시작이 어렵지 막상 내려와서 시작하면 그때부턴 오히려 여유가 생기더라고요. 초반에 몸이 조금 힘들다는 것 말고는 실질적으로 정착하고 살면 더 느슨해져요 . ”

오이 같은 경우는 묘목을 11월 초에 심어서 2개월 정도 키우고 1월부터 수확을 한다. 수확한 뒤에는 담수하고 오염된 부분을 소독하고 관리하는 과정이다. 그 이후에는 여유가 생긴다. 그래서 그는 논농사도 70마지기 정도 함께 하고 있다. 그는 오히려 고생을 기대하고 귀농을 결정했다. 


“기본적인 마음가짐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 농사는 힘들어요 . 그걸 알았고 오히려 더 힘들 것이라고 기대까지 했어요 . 힘들어야 일하는 것 같죠 .” 


회사에 다니든, 사업을 하든 힘들지 않은 일이 어디 있으랴, 너무나 당연한 건데 그 말을 하는 그의 목소리에 힘이 느껴졌다. 그는 이미 뼛속까지 전문 농사꾼이었다. 이전 삶과 비교했을 때 귀농 후 생활 만족도는 백 점 만점에 백 점이라고 자신 있게 말했다. 그는 꿈이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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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박하지만 훌륭한 농부가 되고 싶어요 .” 


이미 농사꾼이 되었지만, 그가 말한 ‘훌륭한’에는 많은 뜻을 담고 있었다. 귀농한 것에 대해 후회는 전혀 하지 않는다고 했다. 


“귀농을 생각한다면 오래 망설이지는 말되, 너무 쉽게 생각해서도 안 돼요. 고민은 짧게 결정은 빠르게! 필요한 건 용기겠죠 .”